저는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유독 좋아했습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인 데다 아버지께서 컴퓨터 사용을 제한하셨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독서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런 제게 만화책만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한 번은 내용에 집중해 읽고, 또 한 번은 그림을 감상하며 『데스노트』 전권을 열 번 가까이 정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스럽게 제 꿈은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장래희망 칸에 늘 만화가를 적어 내는 저를 보며 부모님께서 당황해하시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꿈은 점차 흐려졌고, 대학 진학 후에는 현실적인 고민 앞에 만화가라는 목표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돈은 다른 일로 벌자'는 생각으로 개발자의 길을 택했지만, 운명처럼 웹툰 관련 스타트업에 입사하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웹툰 제작 툴 스타트업에서의 경험
첫 직장에서 이직을 고민하던 중, 웹툰 콘티 제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홀린 듯 지원해 합격했고, 그곳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 지망생들을 모셔 테스트를 진행하거나 웹툰 학원과 스튜디오에서 제품 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23 웹툰 잡 페스타>에서는 부스 운영의 최전선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등 정말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맞다. 내 꿈은 만화가였지.‘
두 번의 수업, 그리고 확신
본격적으로 만화를 배우기 위해 한겨레교육에서 정원 작가님의 6주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글을 콘티로 옮기고,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보는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고군분투 끝에 완성한 첫 작품이 <패치 노트>입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완결의 뿌듯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그 기수에서 작품을 끝까지 완성한 사람은 저뿐이었답니다.
성취감을 맛보니 욕심이 더 생겼습니다. 이후 성수동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성인수 작가님의 6주 수업을 추가로 들으며 기량을 닦았습니다. 이때 두 번째 작품인 <다이버>가 탄생했고, 비로소 '평생 만화를 그리며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육을 넘어, 만화가로서 자생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발걸음
최근에는 틱장애를 가진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응, 응>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만화를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며 소설을 통해 독자의 반응을 먼저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만화를 그려낼 계획입니다. 소재는 주로 제 경험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실력 탓에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새로운 작품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전업과 부업 사이에서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